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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울새x딕] "오늘 꿈에 네가 나왔어."

브루스의 K 2021. 1. 2. 15:2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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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어떤 꿈이었는데?"

"몽정."



딕 그레이슨은 알프레드가 타준 따듯한 핫초코를 홀짝이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콜록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. 그 옆에서 딕과 함께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제이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딕을 당황케 만든 장본인, 데미안을 바라보다가 황당하다는 말투로 물었다.



"넌 그걸 왜 당사자한테 말하는데? 실례인거 모르냐?"

"음침하게 숨기면서 괜히 혼자 망상하고 흘끔거리면서 보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."



데미안은 그렇게 대꾸하며 싸늘한 눈으로 제이슨을 흘겨보았다. 씨발, 저새끼 눈치깠네. 제이슨은 속으로 욕짓거리를 뇌까리며 짧게 혀를 찼다. 하기야, 제이슨이 딕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택의 모두가 다 알고있는 사실이었다. 심지어는 딕 본인조차도 이미 알고있는 듯 했다. 그는 받아줄 생각이 없어보이지만. 데미안은 별다른 티를 내지 않길래 관심없어서 모르는줄 알았는데. 언제 눈치챘는지는 몰라도 아마 꽤 오래된 것 처럼 보였다.

기침이 어느정도 잦아들자, 딕은 살짝 당황한 듯 했지만 늘 그렇듯 사람좋은 웃음을 짓고서 그의 앞에 서있는 데미안의 짧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.



"그랬어? 꿈에서까지 내가 나올 정도로 우리 데미안은 날 좋아하는구나."

"켁. 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? 다른것도 아니고 몽정이라는데?"

"데미안은 한창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을 나이잖아.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하필이면 꿈에 나왔나보지. 안 그래?"



데미안은 딕의 물음에도 그저 말없이 눈만 깜빡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. 딕의 반응을 관찰하는 듯 했다. 데미안은 그를 당황시키려고 했던 모양이지만, 유감스럽게도 딕은 이런쪽으로는 상당히 고단수였다. 쏟아지는 러브레터와 러브콜, 대면 고백중에는 이보다 더 쇼킹한 일들이 많았으므로. 물론 그중에서 형제의 고백같은 건 없었지만.

그래도 다행히 상대는 어린애였고 그는 데미안의 감정을 단순히 어릴때의 방황쯤으로 여겼기에 이런 덤덤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. 데미안은 '재미없게.' 한마디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. 벽난로 앞에 늘어져있는 타이투스에게로 다가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며 제이슨은 짧게 혀를 차고는-아마도 저 발랑까진 새끼좀 봐라 라는 의미였겠지만 딕에겐 두 동생 모두 발랑까진건 마찬가지라 그는 딱히 동조해주지 않았다-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.



"저번에 부탁한 갱 집단 동향 파악 끝내놨어. 사람 좀 심고 도청기 몇개 달아두니 금새 잡히던데."

"아, 혹시 자료 정리해둔 거 있으면-"

"안그래도 전부 정리해놨으니까 내 세이프하우스로 가자."

"알았어, 제이. 얼른 가자."



아직 핫초코도 다 안마셨는데?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딕을 보고 '이건 아닌데'라는 표정을 지었지만, 딕은 살갑게 웃으며 시간아까우니까, 라는 답을 던지고 스탠딩 행거에 걸어두었던 자신의 재킷을 다시 챙겨입었다. 그런 그를 향해 엣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.



"그레이슨. 올 때 회사 앞에 있는 디저트 카페에서 카라멜 푸딩 좀 사와."

"응? 아, 거기 푸딩 맛있지. 알았어."

"야, 꼬맹아. 넌 시간도 많으면서 니가 직접 가지 왜 얠 시키냐?"



데미안은 제이슨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다.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는 제이슨의 반응을 반쯤 무시한 딕이 손목에 찬 시계를 보더니 다시 데미안을 향해 물었다.



"데미안. 지금 4시인데, 그 가게 6시에 닫지 않아?"

"그러니까 오는 길에 사오라고."



요컨대, 너무 오래 있지 말라는 뜻이로군. 딕은 알았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. 저새끼, 지금 나 견제하는거야? 꼬맹이 주제에? 제이슨은 그런 데미안의 말이 너무 황당해 뭐라 말도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. 그런 제이슨을 향해 눈길을 돌린 데미안이 일순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삐뚜룸하게 올렸다.



"저... 저,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..."

"다녀와, 그레이슨. 기다릴게."

"아, 그렇게 말하면 진짜 사올 수 밖에 없잖아. 알았어, 데미안. 얼른 갔다가 올게."

"야 너는... 아. 씨. 진짜..."



제이슨은 딕에게 뭐라 쏘아붙이려다 왈칵 짜증을 내곤 제 머리를 잔뜩 헤집으면서 자리를 떴다. 딕은 데미안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, 데미안도 그에게 가볍게 눈짓하며 다녀오라는 뉘앙스의 시선을 보냈다. 이내 두 사람이 저택을 빠져나가자, 데미안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몸에 천천히 힘을 뺐다. 몽정했다는 말로도 별다른 타격을 못 느끼는 건가. 그는 타이투스의 넓다란 등허리에 뺨을 살짝 기댄 채 다음엔 어떤 말로, 혹은 어떤 행동으로 그를 당혹시켜야할지 고민했다.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? 그런 건 멍청한 토드나 드레이크놈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.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따끈따끈한 반려견의 몸을 좀 더 꼭 끌어안아주었다.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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